익산 왕궁리유적 오층석탑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난 추석 명절 익산 왕궁리유적지오층석탑을 보고 왔습니다. 익산 미륵사지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지요.

익산 왕궁리유적을 소개하자면~ 
위치: 전북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631-30 
전화: 063-859-4635(왕궁리유적전시관)

1998년 9월 17일 사적 제 408호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은 21만 6,6862㎥입니다. 1989년 7월부터 문화재관리국에 의해 학술발굴조사되었으며, 인접한 익산 미륵사지와 함께 최대 규모의 백제유적으로 꼽히며, 백제의 왕도였다는 왕도설 등으로 백제사의 수수께끼로 남아있습니다.

이 유적에는 백제 무왕떄인 639년에 건립하였다는 제석정사터를 비롯해, 그 안에 관궁사, 대궁사 등의 절터와 대궁터가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진 토성터 등이 있어, 이곳이 왕도였거나 왕도와 직접 관련이 있는 유적이라는 학설이 지배적입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대동지지><익산읍지>등의 문헌들은 이곳이 "옛날 궁궐터", "무왕이 별도를 세운 곳", "마한의 궁성터"라고 적고 있어 이를 뒷받침합니다.


추석당일에 갔었는데 고리던지기며 굴렁쇠 , 팽이치기등 놀이를 하고 있더군요. 개방되어 있는 덕분에 잘 둘러 보았습니다.

많이 담아보려고 했으나 일부에 그쳤네요









익산 왕궁리유적전시관에서  보았던 옛날 화장실 구조입니다
처음보았는데 옛날이지만 설계가 잘된것 같아요









왕궁리유적에 대한 설들에 대하여 더 알아보니 1976년 및 1977년에 부분적인 시굴 조사가 있었으며, 1989년부터 20년동안 발굴조사결과 백제 무왕때에 왕궁으로 건립되어 경영되다 후대에 왕궁의 중요 건물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사찰이 건립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유구들은 크게 세 시기로 구분되는데, 첫째 백제 말경에 해당되는 유적, 둘째 통일신라 초기 유적(성벽), 셋째 통일신라 초기-말기 경에 해당하는 유적(사찰)등입니다. 초창기 유적의 성격은 출토유물 등을 통해서 유적은 왕실이나 관부와 관련된 유적으로 인식할 수 있었으며, 가장 늦은 시기의 유적은 사찰과 관련된 유적과 유물이 확인되었습니다.

따라서 마한과 관련된 설 및 후백제 견훤 도읍설은 뚜렷한 근거가 없은것으로 확인된 것입니다. 출토된 유물은 백제시대부터 통일신라 후기까지 유물이 다양하게 출토되었으며, 백제시대의 유물로는 기와류, 토기류 등이 대부분입니다. -네이버 여기저기서 발췌 정리-















익산 왕궁리유적 오층석탑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관람하며 읽어보는데 와우~  선조들의 지혜로움 ~참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왕궁리유적 전시관을 나와서 오층석탑 있는곳으로 발길을 돌려봅니다
참 왕궁리유적은 2015. 7. 4일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지정이 되었답니다


이 장소를 지나면 왕궁리 오층석탑 으로 가는 길목이 나옵니다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은 국보 제289호 1997년 1월 1일 지정되었습니다.    

1단의 기단위로 5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으로, 기단부가 파뭍혀 있던 것을 1865년 해체하여 수리하면서 원래의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탑의 기단은 네 모서리에 8각으로 깍은 주춧돌을 기둥삼아 놓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길고 큰 네모난 돌을 지그재그로 맞물리레 여러 층 쌓아 올려놓아 목조탑의 형식을 석탑에서 그대로 재현하고 있습니다.
이 팔각기둥과 네모난 돌들 사이는 흙을 다져서 메웠는데 이 속에서 백제시대의 기와 조각이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발굴 중에 기단 각 면의 가운에데 2개씩 기둥조각을 새긴 것이 드러났으며, 탑의 1층 지붕돌 가운데와 탑의 중심 기둥을 받치는 주춧돌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되었습니다.

1층부터 5층까지 탑신부 몸돌의 네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겼으며, 1층 몸돌에는 다시 면의 가운데에 2개씩 기둥모양을 조각했고 지붕돌은 얇고 밑은 반듯하나, 네 귀퉁이에서 가볍게 위로 치켜 올려져 있으며, 방울을 달았던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각 층 지붕돌의 윗면에는 몸돌을 받치기 위해 다른 돌을 끼워놓았으며, 5층 지붕돌 위에는 탑머리장식이 남아있습니다.

지붕돌이 얇고 넓어 빗물을 받는 낙수면이 평평한 점이나, 탑신부 1층의 지붕돌이 기단보다 넓은점 등 백제석탑의 양식을 일부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언제 제작되었는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상태였으나, 1965년 보수작업 때 기단의 구성양식과 기단 안에서 찾아낸 사리장치의 양식이 밝혀지면서 그 시기가 비교적 뚜렷이 밝혀졌습니다.

즉, 백제의 옛 영토 안에서 고려시대까지 유행하던 백제계 석탑양식에 신라탑의 형식이 일부 어우러진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추측이 됩니다. 이 석탑에서 발견된 고려시대의 유물들은 국보 제123호로 일괄 지정되었으며, 최근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발굴과정서 지금의 석탑에 앞 목탑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흔적이 이 탑 밑부분에서 발견되어 다시금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왕궁리 오층석탑안에서 출토된 유물이 사진으로 있었는데요. 사리장엄구 일골 사진과 금동여래입상입니다. 
사리장엄구 일괄 에는 유리구슬, 금제방형사리합, 유리재 사리병과 금제방형사리병좌, 금동제경판합 그리고 그 아래 은제도금금강경판이 있으며 사진에는 없지만 청동요령과 사리합, 경판합 각각의 외함도 같이 발견되었으며 현재는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넓기도 하고 많은 시간 발굴터를 끝까지 다 돌아보진 못했지만 맑디맑은 가을 추석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되어 있는 익산 왕궁리유적과 오층석탑 잘 보고 왔답니다